장마
류자키 이쿠오 X 단노 타츠야
w. HARTNET
저번주부터 추적대던 비가 일주일 째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후 세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밖의 상황에 괜시리 맘이 울적해졌다. 평소 인텔리한 제 캐릭터와는 맞지 않는 이 기분을 주위도 느낀 걸까. '이번주는 센치한 캐릭터이십니다.' 오므라이스를 반 쯤 남긴 제 행동에 의아해 했던 레스토랑 주인에게 건낸 놈의 말이 반짝하고 떠오른다. 의도치 않은 설정이었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피던 서류를 대충 덮어두고 그대로 몸을 의자에 뉘였다.
비가 이렇게 길게 오는 것은 그때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비가 문제가 아니라 제 감정 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 한동안 떠오르지 않았던 그 날의 기분이었다. 비가 와도, 장마가 진행 되어도 바빴다는 핑계로 전혀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떠오르지도 않았다. 저를 처음으로 감싸주었던 선생, 아니 제 첫사랑의 숨을 마지막으로 느꼈던 날. 그 차갑게 비오던 날의 기분이 이렇게 다시금 저를 괴롭히는 것은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 제 자신을 느끼게 했다.
'수신된 메일이 한 건 있습니다.'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누워있을 때였다. 울릴리 없는 핸드폰에 메일이 수신되어 뿅뿅대고 알림음을 뱉어내었다. 긴급한 상황이라도 생긴건가. 평소와 같이 난생 처음보는 계정으로 온 메일에 나직한 숨을 내어쉬곤 그 내용을 확인했다.
<신주쿠역 앞 ○○비즈니스 호텔 1007호.>
보통 낯 익은 문체로 써 갈긴 익숙한 장소여야 할 내용인데, 처음보는 내용에 순간 호흡을 멈추었다. 등을 맞대고 앉아야 하는 바도, 식당도, 카페도 아닌 장소. 멍하게 화면 안을 들여다 보다 픽 웃음을 흘렸다. 거의 다 되어간다고 허세라도 부릴 생각인가. 요즘 들어 녀석에게 고까운 시선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쯤은 저도 잘 알터인데. 못마땅한 내용에 삭제 버튼을 누르려다 메일의 제일 아래 가나로 정직히 쓰여있는 그 말에 행동을 멈추었다.
사무실을 나와 메일 안에 있던 그 호텔로 급히 향했다. 우산을 써도 그저 추적거리는 비 덕분에 꽤나 맘에 들었던 구두하며 쟈켓까지 모두 젖어버렸으나 그것에 대해 그리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지금 이 뭐같은 기분을 저만큼이나 느끼고 있을 메일 수신자에게 가는 것이 더 급급했으니.
헝클어진 앞머리를 다시금 단정히 쓸어 넘기고, 비에 젖어 얼룩진 안경을 닦아내며 프런트에서 1007호의 키를 받아내었다. 하필 왜 1007호를 잡았담. 이상한 센스라며 카드키를 쟈켓 주머니 속에 대충 넣어두고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그의 성격에는 맞지않게, 제 생각보단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1007호는 혹여나 저와 관련이 없는 남이 보기라도 할까 굳게 닫혀있었다. 목욕탕마냥 이 전 층을 모두 빌렸을리는 없고. 조용한 그 주변을 두리번 대고 살핀 후에야 넣어두었던 카드를 꺼내 그 굳은 문을 열어내었다.
"이쿠오."
밖에서는 그렇게 경계하듯 닫혀있던 문이었는데, 실내는 왜인지 모를 만큼 창문이 활짝 열려있어 비 특유의 냄새가 방 안을 뒤덮고 있었다. 빗소리 외에는 그저 적막만이 흐르는 그 방.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떨어지는 빗방울에 실리듯 울려퍼지다 사라졌다. 별 반응 없이 흩어진 제 목소리에 천천히 현관을 벗어나 룸 안으로 깊숙히 들어왔다.
"이쿠오."
창문 앞에 녀석이 끌어다 놓은 것 같은 쇼파가 보였다. 그리고 그 쇼파 위에 어릴적과 같은 모습으로 앉아 빗방울이 내려오는 것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녀석이 보였다. 그 모습에 다시금 그의 이름을 부르자, 멍하니 밖을 보던 녀석이 천천히 고갤 돌려 제게 얼굴을 내보였다. 텅 빈 눈으로, 위태로운 얼굴을 하고서.
"타츠야."
그리고 내 이름을 나지막히 불렀다. 그 울림이 꽤나 나쁘지 않아 안도라도 한 듯이 한숨을 내어쉬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다가갈 수록 느껴지는 녀석의 내음에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곤 그 옆 쇼파에 편히 걸터 앉았다. 또 우산 없이 밖에 나갔구만. 녀석의 축축한 머리칼이 수긍하듯 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렸다.
"이젠 호텔로도 부르고, 너무 태평해진 것 아니야?"
"부른다고 온 너도 태평해."
그건 그러네. 평소같이 꽉 저 자신을 조였더라면 이곳에 나와있지 않아있겠지. 비가 오는 것 때문에 무언가라도 미쳐버린 것이겠지. 젖어서 아직도 물을 떨어뜨리고 있는 녀석의 머리칼을 응시하다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빗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만이더라. 때에 맞지 않는 여유로움에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녀석의 눈은 아직까지도 창밖을 향했다.
그렇게 한동안 우린 빗소리를 들었다. 아무 말도, 어떠한 행동도 없이 그저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그 사람이 흘리는 눈물과 같은 그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것보다 구슬픈 물방울의 흩어지는 소리. 덕분에 아득해져오는 정신이 좀처럼 깨지 못해 눈만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그 짙어져오는 묘한 향내에 눈을 떴을 땐, 새앙쥐같이 폭삭 젖어있는 녀석이 제 앞에 있었다.
"평소보다 우울해서 죽는 줄 알았어."
"......"
"혼자선 이 기분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어."
"넌 아직도 애구나."
"그러는 너도, 나랑 같은 기분이었을테니까. 아직 애구나."
멋대로 단정짓지 말라는 말이 나올 수 없었다. 머리야 내쪽이 더 우수해도, 이쪽으론 더 우수한 건 녀석이다. 또 다시 느껴지는 그 생각에 픽 웃음지으며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밑으로 푹 숙였다. 그러자 그 비내음 가득한 녀석의 손이 제 어깨를 지긋이 눌러 감싸왔다.
뭐하는 것이냐 물을 새가 없었다. 아까까지 제 시선을 빼앗았던 그 머리칼의 물방울은 급히 제 볼에 닿아 타고 내려왔고, 파랗게 질려있던 그 볼품없던 입술은 온기를 찾는 듯 제 입술을 물어왔다. 제 등 뒤에 있는 문신처럼 저 자신을 물어 삼키려는 듯한 녀석의 입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단내가 날 정도로 질척하게 제 입 안을 간질이던 녀석의 혀는 끝을 모르고 저를 삼켰다. 좀 더, 조금 더. 단정하게 빗어올렸던 제 머리가 도로 헝클어질 정도로. 우울감에 빠져있던 제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될 정도로.
"미친놈. 뭐하는..!"
급하게 밀어내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핀트가 나간 녀석은 돌아올 수 없었으니까. 빠져나가려 해도 더욱 옥죄어올 뿐이었다. 녀석에게 물린 입술은 이미 퉁퉁 부어 후끈거렸다. 게다가 흠뻑 젖은 그 몸이 제 몸에 닿아올수록 어느정도 말랐던 쟈켓은 도로 엉망이 되어 흐트러졌다. 제기랄,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개새끼마냥 이렇게 물어올줄이야. 목 선을 따라 제 이를 세워 물어대는 녀석의 행동에 몸을 움찔거리곤 야릇한 그 기분에 취해갔다. 점점 저도 이상해져가는 기분이었다. 나른한 빗소리가 저의 그 기분을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나지막히 뱉어내는 그 숨소리조차 밀어내고 싶지 않았고, 거부해내지 않는 제 몸은 금세 드러났다. 오히려 후끈하게 다는 온 몸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남은 자존심이라도 세우려는 듯 주먹을 들어다 내쳤지만 도로 제 몸을 탐하는 듯 핥아내려올 뿐이었다.
한참간의 실랑이에도 불구하고 몸이 달아올라 저도 별 수 없어질 때 즈음. 이미 풀려져 드러난 제 몸과 그 사이에 벌써 남겨놓은 불긋한 녀석의 흔적. 심지어는 그 손에 크기를 키운 제 것까지. 창문이 열려져 빗소리가 전부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찬 기운보단 뜨거운 기운만 느껴져 제 몸은 이미 축축하게 땀으로 젖어있었다. 하 시발, 나지막하게 뱉어낸 욕지거리에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드는지. 묘하게 웃음짓는 그 얼굴로 녀석은 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손을 뻗어 이미 비뚤어진 제 안경을 벗겨내며 다시금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내 밑에서 울 너를 감상하는데는,"
"......"
"안경은 방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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