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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이쿠] 마지막


마지막

단노 타츠야 X 류자키 이쿠오

w. HARTNET

*

꼬박 며칠동안 같은 것만 생각했다.

내가 만약 끝까지 너와 함께 가고 싶다고, 손을 놓지 말아달라고 이야기 했으면 어떻게 될지. 그리고 만약 너를 여기서 놓는다면 너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그 두가지 선택지가 내겐 너무나 가혹했다. 21년이라는 세월이 그리 짧지 않았기에 나는 네 손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네가 사라지게 되면 너도 물론 힘들겠지만 유일하게 이 세상에 남았던 '가족'을 잃는 나의 슬픔이 두려웠기 때문에.


하지만 곧 부서질 것 같은 낭떠러지 위에 둘이 서있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어떤 이는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해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지만 저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이대로 네 손을 앞으로 걸어나가면 우린 같이 떨어져 죽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나는 그래서 너의 손을 놓으려 했다. 언제나 나를 보며 실실 웃고 울망이는 눈을 하고 징징거렸던 너를, 나 없이는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너를. 내 옆에서 무참히 던져 버려두고 나 혼자서 그것을 맞이하려 했다. 나와는 달리 너에겐 '가족같은' 형사들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며칠간의 생각을 끝내듯 너에게 총을 겨누었다. 모든 것을 잃은 듯한 너의 눈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나를 계속 원망해도 좋으니 너는 살아가라. 엎드려 오열하는 너를 두고 바이크를 몰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까만 헬멧 안 눈새로 자꾸 뜨듯한 것이 흘러 시야가 방해 될 정도였다.


거의 일평생을 함께 했던 너를 두고 앞으로 걷기 시작한 첫 날이었다. 절름발이가 된 것 같이 어딘가 불완전한 제 걸음이 느껴졌다. 네가 옆에 있을 때만 해도 그렇게 씩씩하게, 겁없이 나아가던 내 발걸음이 자꾸만 더뎌지고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너를 다시 제 옆으로 끌어 당기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짓은 할 수 없었다. 네 옆에 그 여자를 붙여놓고, 감사하단 말을 할 정도로. 나는 참아내고 또 참아내었다. 네가 나대신 그 여자 옆에서 행복하길 바랬다.


그렇게 참고 바래왔는데. 너는 네 친부에게 총을 겨누며 나타났다. 어째서. 평범하게 살아갈 기회를 네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 같이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고 안전한 삶, 행복한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그 내친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에 단단히 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인지. 그날 처음으로 사냥감을 앞두고 눈동자가 흔들림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나와 달리 넌 매선 눈을 한 채 서 있었다.


너의 그 눈이 다시금 선하게 사그라 들었을 즈음. 나는 몸을 가누기는 커녕 숨을 쉬기 조차 힘들었다. 애처롭게 빙빙 맴도는 나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 그리고 가까이서 느껴지는 너의 그 온기. 나의 뺨 근처에 닿아오는 너의 숨. 굳이 눈을 또렷히 떠 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난 널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넌 끝까지 내 손을 잡아 주는구나. 괜히 실소가 터져나왔다.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너의 그 울음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까지 떠안고 있었던 모든 시름이 풀려나갈 만큼 편안했다. 아까부터 자꾸 제 복부를 찌릿하게 강타해오는 그 아픔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네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렸다. 기쁨과 슬픔, 모든 것이 공존해오는 눈물을.


평소만큼이나 종알거리는 너의 말소리를 듣다보니 어느새 밀려오는 잠에 그대로 몸을 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마호로바에 있는 너와 내가 보였다. 애처로울 만큼이나 붙어있는 너와 나.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아파왔지만 울음보단 웃음으로 그것을 지켜보았다. 나의 가족이자 유일한 파트너, 류자키 이쿠오의 마지막 호흡을.





"어서와. 이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