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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이쿠] Alpha

하트네트 2015. 4. 23. 20:59



Alpha

단노 타츠야 X 류자키 이쿠오

w. HARTNET

*

  하얗던 손 마디가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손마디를 따라 살덩어리의 진득한 물컹거림이 느껴졌다. 평소 사람을 내칠때와는 다른 그 느낌. 순식간에 돌아온 이성을 통해 본 제 앞 상황은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제야 제 코를 통해 느껴지는 어지러울 정도의 비릿한 냄새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차라리 이 세계가 흑백 뿐이었다면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달달 떨려오는 제 손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희번뜩하게 뜬 동공은 제 앞에서 축 쳐져 식어가는 물체만 담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은 자꾸만 제 손안에서 만져진 물컹대는 감각을 떠올리게끔 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 다리는 절로 풀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쿠오."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제 눈두덩이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하염없이 흔들리는 눈동자가 자신의 혼란을 그에게 알린 것일까. 그 온기에 자꾸만 빠르게 뛰기를 재촉하던 심장이 잠잠해져갔다. 그래, 나 혼자가 아니었어. 그가 내 옆에 있었어. 존재감을 가까스로 인식하자마자, 나는 그에게 답싹 안겼다. 익숙한 온기가 이젠 더 넓은 범위로 전해져왔다.


  "돌아가자."


  평소보다 더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어오는 그였다. 고개를 얕게 끄덕대며 천천히 떨어지자 그의 등판 가득 묻은 붉은 것에 시선이 갔다. 다시금 불안해져오는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건지, 양 볼을 감싸 제 눈을 마주보고는 조용히 고개만 내흔들었다.


  다리가 풀린 저를 부축하듯 잡은채 돌아온 곳은 그의 자택이었다. 평소보다 더욱 하얗고, 넓어보이는 그 공간은 누구보다 붉은 저 자신이 들어가도 좋을까 망설이게끔 했다. 그리고 현관에 서서 멍하니 서있는 저 자신을, 깊은 한숨조차 쉬지 않고 진득하니 굳은 제 손을 잡아다 이끄는 것은 그였다. 그는 엉망이 된 내 옷을 벗겨다두곤 더러워진 날 하나하나 직접 씻어주었다. 손 마디마디부터 머리칼 하나까지 씻어내는 그 손길이 부끄러움이라 하기엔 좀 이상한 기분에 취하게끔 했으나, 그저 그 손길을 받아드렸다.


  샤워가운을 걸친 채 더러워진 옷이 세탁되어 마르기만을 기다리며,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물론 서로의 다짐이 이렇게나 큰 것인지 몰랐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정도로 정신적인 충격이 올 줄은 몰랐다. 경찰이 하지 않은 심판을, 우리가 한다. 그것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당연 포함 되어있고, 난 오늘 그것을 처음 경험한 것이다. 뭐든 처음이 힘들다고 하지만... 냉정해지기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뜨거운 꿀우유. 조금이나마 몸이 풀릴거다."


  알맞게 데워진 꿀탄 우유를 건내는 손을 따라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제 자신의 반응이 크기에 내색치 않고 있지만 그도 지금 동요하고 있을 것이다. 아까부터 찌푸려져 펴지지 않는 미간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신경쓰이지 않는다면 이상할 정도로 주름진 미간. 따끈한 우유잔을 양 손에 매만지다 천천히 그 미간을 손 끝으로 톡, 아주 살며시 건들어 보았다. 그러자 놀란듯 고개를 뒤로 한 그가 나를 돌아 보았다.


  "...탓짱."


  마주친 두 눈에 읊조리듯이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러자 아무 대답 없이 더욱 저만을 담아오는 그였다. 어떤 반응이던, 그는 저를 편안하게 했다. 눈동자 안에 저 자신만이 가득 차 있는 것에 급히 눈물이 차는 기분이었다. 탓쨩. 다시금 그의 이름을 부르고는 묘한 분위기에 답하듯 그의 입술을 물었다.


  급작스러운 입맞춤에 그는 놀란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저는 머뭇거리기 일수였으며 그런 저를 보며 웃음으로 입 맞추던 것은 그였기 때문이다. 그런 제가 몽롱한 눈으로, 누구보다도 더 먼저, 그의 입술을 물어대며 더욱 제 품 안에 끌어 넣으려 하고있다. 더욱 그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제 옆에 있는 그를 느끼고 싶어서.


  "안아줘, 탓짱. 더 안아줘."

  "이쿠오.."

  "제발.. 탓짱."


  한시라도 떨어지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무슨 생각인지, 머리 한가득 저를 눌러오는 그 생각이 저를 자꾸만 능동적이게 했다. 아까의 흔적인지 붉은 얼룩이 남아 그대로 배어버린 그의 넥타이를 천천히 잡아 내리며 셔츠 단추에 손을 가져갔다. 저가 잠들면 씻으려 했던 것이겠지.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그런 짓을 하고 있으려니. 그의 손이 제 손을 급히 잡아내었다. 그리곤 한참 뒤, 고갤 끄덕이며 저를 그대로 눕혀왔다.


  맞잡은 손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리고 서로를 원하듯 탐하는 입술은 그 손보다 더욱 높은 온도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샤워가운 새로 들어온 그의 손은 제 몸을 보드랍게 쓸어내려왔다. 허술히 묶여있던 매듭이 풀려나가며 드러난 제 몸에 아까의 그 뜨건 입술이 닿아오자 절로 신음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목덜미 가득 마치 독사마냥 물어오는 그였음에도, 그것에 물려 죽어도 좋다는 듯 저는 그의 셔츠 자락을 꾹 잡아내며 등허리를 더듬대었다.


  "으응, 탓쨩.."


  평소보다 더 재촉한 것이 맞다. 훤히 드러난 제 몸이 달아오른 것도 이유지만 어서 빨리 그에게 안기고 싶었기 때문에. 답답히 잠겨진 단추를 풀러내고 그의 옷자락 위로 뭉근히 쓸어올리자 다시금 움찔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무거운 숨이 이어지곤, 제 허리께를 잡아다 끌어 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보채지마."


  귓가에 닿는 불평과 동시에 제 뒤에 그의 손가락이 닿아왔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 건조한 그 곳을 괜히 눌러보다,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보채지 말라는 말과는 반대로 급작스럽게 빨라진 그의 행동에 긴장이 되어 자꾸만 몸이 단단히 굳어져 몸을 부시럭대고 움직였다. 그러자 그 움직임도 허락되지 않는듯, 발목을 꾹 쥐어 다리를 올려 들곤, 제 엉덩이 골 새에 무언가를 잔뜩 펴바르기 시작했다.


  소름돋게 차가운 그 감촉에 몸을 움츠린 것도 어느새, 그 새를 파고드는 기나긴 손가락에 입술을 앙 물었다. 아까 자신이 느꼈던 그 마음의 아픔보다 못한 지금의 고통이었으나 어딘가 속죄하는 기분에 제 뒤에 깔린 샤워가운을 꾹 잡은채 소리를 삼켜내었다. 그리고 그런 저를 보는 그의 시선은 어딘가 평소보다 거칠어서, 눈을 지그시 감아내었다.


  "하..윽, 탓짱.."

  "후.."


  그리고 그 시선은 행동과 이어졌다. 처음부터 강하게 쳐올리는 그것은 제 뒤에 강한 고통만 남겼다. 분명 쓸어주어야 하는 허벅지도, 허리도 모두 비어있는데. 단지 발목만 잡은 채 저를 꿰뚫었다. 마치 처음 하는 사람들 마냥 쾌락 없는 고통뿐인 섹스. 허나 지금의 저는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이 더하면 더 할수록 만족감이 느껴져왔다. 이렇게라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마음이 버틸 수 없으니까. 마음이 부서져 버릴수도 있으니까.


  불이 일어난 듯 뜨거운 뒤와 질척거리며 맞부딪히는 살의 소리. 그리고 굳게 물어 닫은 입술 새로 삼켜지는 제 신음소리만이 방을 가득 채웠다. 목을 둘러 감싸 안은채 흔들리는 제 인영이 눈에 띄더라도 모른척 그저 눈을 감을 뿐이었다.


  언젠가부터의 이 행위가 이렇게나 애처로운 것은 처음이었다.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위해서 하는 행위. 그도 그걸 알고 있어서일까. 평소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힘으로 자신을 안아오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실망한 듯, 어느새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을 땐 그 또한 두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얼굴 가득 흘린 땀, 아니 눈물인지 모를 그것. 고통으로 얼룩져 이미 몽롱해져있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아픔 뿐이었던 그 행위 내내, 그리고 거추장스러울 만큼 느껴졌던 그 쾌락의 정사 후, 나와 그는 울었다. 제 목에 걸린채, 그의 등에 새겨진 채. 두마리의 용 또한 거칠게 흔들리며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울음 끝에, 나는 그에게 뜨거운 온기를 구했다. 마음의 아픔도 몸의 아픔도 너라면, 너랑 같이 있다면. 이 온기라면.


  "..탓쨩.."

  "......"

  "안아줘.. 응?.."


  어두운 방 안은 엉망이 된 제 자신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애달픈 저를 안고있는 그 온기만 느껴질 뿐. 맨 살끼리의 체온은 정상 체온보다 더 높은 듯 하였다. 더 꽉 안아줘, 아파도 좋으니 더 강하게. 등허리의 문신마저 끌어안듯 제 온 팔에 조금이나마 남은 힘을 쏟아 그를 껴안았다.


  유난히 달마저 어두웠던 그 날. 너와 나는 서로의 체온을, 그리고 아픔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탐하고  탐했다. 마치 우로보로스, 꼬리를 삼키는. 두 마리의 용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