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쿠타츠] 겨울
겨울
류자키 이쿠오 X 단노 타츠야
w. HARTNET
*
꿈을 꾸었다. 요즘 들어 계속해서 반복되어 꾸는 꿈이었다. 끔찍한 악몽이라고 이름을 붙이자면 어울릴지도 모르겠으나 또 이 꿈이 없더라면 허전하여 제 일상마저 불안해질것 같은, 장르를 정하기 힘든 꿈이었다.
바위 위로는 늘 흰 눈이 쌓여있었다. 그러나 왜인지, 계곡 물은 얼지도 않은채 흘러가기 바빴다. 물 속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맑은 그 곳은 저에게는 안식처이자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전부 볼 수만은 없었으며, 그 바로 볼 수 없는 세상 안에는 부유히 물에 떠 내려오는 네가 있었다.
아무런 힘 없이, 눈을 감은 자태로 내려오는 너는 유난히 빛이나 바라볼 수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까만 옷을 입은 너였음에도 불구하고 빛이 나서 무테 안경 사이로 보이던 주름진 미간 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너의 평안한 모습이 나는 항상 두려웠다. 내려오는 너의 모습을 보고 헐레벌떡 계곡 근처로 다가갈채면, 그 맑던 물이 어느새 시커멓게 흐려져 너를 삼켰다. 그리고 깊고 깊은 그 계곡 속으로 너는 사라졌다.
"추워."
아픈 기상 후, 왜인지 떨리는 몸을 웅크린 채 부스스한 제 곱슬 머리를 내흔들며 거실로 나섰다. 아무도 없는 싸한 집에 익숙해져갈 만도 한데. 여전히 어색한 공기에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내려본다. 너와는 다르게 어딘가 부족한 손놀림이었지만, 향만은 그대로였다. 아침마다 나던 익숙한 커피향에 긴장 되었던 몸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
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짝 내려간 안경을 올려가며 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무표정이었던 너였지만 그 순간 만큼은 그 무표정이 어떤 표정보다도 무서웠다. 그리고 그 표정 뒤엔 짧은 한숨이 이어졌다.
"이쿠오."
"응, 타츠야."
"미안하다."
무엇이 미안한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 답이 제게 부정을 하고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답을 하고있는 너보다 훨씬 더 잘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을 건들지는 못했다. 나만 알고 있는 너의 과거, 너의 습관, 너의 웃음. 그 모두를 놓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직 덜 익은 열매를 먹었을 뿐이야. 나는 그 거부에 그렇게 대처했다. 동전의 양면에 서있지만 같은 방향을 걷고 있는 우리였으니. 시간이 지나 열매가 익는다면, 그 무엇보다 달콤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와 나는 양 끝이다. 모든 것이 끝난다면 서로를 죽이려들지 모르는 양 끝. 너와는 영원을 약속할 수 없어."
이어지는 말은 가슴을 무너뜨렸다. 우리는 여느 연인처럼 웃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말을 무덤덤히 뱉는 너는 떫은 열매조차 만들어질 수 없는 겨울같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겨울은 제 손과 발 끝이 얼어 붙게 했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잠들게 만들었다.
*
끝을 모르게 차가웠던 겨울은 붉은 비에 의해 그쳐 사라졌다. 온 몸을 얼어붙게 했던 추위도 동시에 사라졌지만, 제 몸은 그 추위에 이미 익숙해져 마치 봄을 맞는 눈사람처럼 서서히 형태 없이 녹아갔다. 녹아가는 저 자신을 잡아줄 추위가 필요했으나 그 추위는 더 이상 제게 희망조차 주지 않았으며, 그저 그 추위를 사라지게 만든 붉은 비만이 저 자신을 물들일 뿐이었다.
*
또 다시 그 꿈을 꾸었다. 하지만 어딘가 달라진 그 꿈은, 저 자신을 영원한 꿈으로 들어오도록 손짓하는 듯 했다. 밝게 빛이나 보이지 않았던, 그 평화로이 누워 떠다니던 네가 제 시야에 또렷히 들어와 제 자신을 계곡 근처로 향하게 하였다. 항상 다가가면 혼탁해졌던 그 계곡은 제가 근접해왔음에도 너를 삼키지 않았다. 그리고 너는 감고있던 그 눈을 살며시 떠 나를 바라보았다.
"이쿠오."
그 날 이후로 처음 듣는 나의 이름. 그 울림은 다른 방면으로 저를 무너뜨렸다. 말 한마디였음에도 그렇게 떨릴 수 없었다. 나지막한 호출에 목을 가다듬듯 침을 삼키곤,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이제 그만, 봄을 맞아."
"......"
"알고 있잖아, 겨울은 이제 없다는 걸."
"타츠야."
"바보같은 네 꿈속에서만 반복되는 겨울이야."
혼자서 끝낸 겨울을, 아직도 저 자신은 헤어나오지 못한 그 겨울을 보내라는 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금 얼어 붙어도 좋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봄을 맞으라 하는 것일까. 딱딱하게 굳어지듯 아파오는 제 가슴에 눈물만 그렁거리며 다시 계곡 속으로 사라져가는 찬 겨울을 바라보았다. 내게 달콤한 꿈을 허락치 않는 야속한 겨울. 어디 하나 변치 않았지만, 내게는 변하기를 바래오는 널 부르며.
"...꿈 속에서조차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구나."
깨어난 후 공허한 천장을 바라보며 연신 중얼거렸다. 그리곤 다시금 널 만날수 있는 꿈 속으로 들어가려 눈을 감는다. 겨울이 다 가고 봄, 여름, 가을이 찾아오더라도, 그래도 난 언제나 이 겨울 안에서 널 기다릴테니.
*( 참고 : 연성하래 님 (@